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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사회과학
여성의 다시쓰기 : 고전소설을 읽는 욕망에 관하여
출판사오월의봄,  판형/쪽수 140*210mm/308,  출간일 2022-03-29  저자 노지승
ISBN 979116873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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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프롤로그: 다시읽기와 다시쓰기의 여성 욕망
1장 누구의 것도 아닌 춘향
2장 춘향전의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
3장 자매애와 모성애 다시쓰기
4장 누가 심청을 착취하는가
5장 도시로 간 심청 혹은 70년대 여성 프롤레타리아

에필로그: 새로운 시대의 춘향, 장화·홍련, 심청

저자소개:저자 : 노지승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과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거기에 담긴 누군가의 말과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때로는 공감한 뒤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해설과 주석을 달아 전달해주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 혹은 유명한 이들의 감춰진 내면을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유혹자와 희생양: 한국 근대소설의 여성표상》(2009)과 《영화관의 타자들: 조선영화의 출발에서 한국영화 황금기까지 영화 보기의 역사》(2016)를 썼고, 번역한 책으로는 《페미니즘 영화이론》(2012),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여공문학》(2017)이 있다.
출판사서평:춘향전: ‘춘향 판타지’와 현실 속 ‘춘향’들의 삶

춘향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만도 20여 편이나 만들어졌으며 또 다른 버전으로 개작된 사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 책이 다루는 세 편의 고전소설 가운데 남성 혹은 지배자의 욕망이 가장 강하게 투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춘향전과 20세기 개작들이다. 춘향은 여성의 육체와 사랑이 어떻게 모든 주류 이데올로기에 의해 보수적으로 형상화되어 전유될 수 있는지, 즉 젠더 트라우마의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최초의 춘향전 영화(1923)가 일본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춘향이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서 소비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기생이 일본인 남성들에게 조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일본인 남성들이 조선을 관광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춘향전 영화들은 고전소설의 스토리를 충실히 답습할 뿐 새로운 장면화나 새로운 플롯이 가미되어 있지 않다. 북한에서 제작된 춘향전 영화 역시 몇 가지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외하면 남한에서 제작된 춘향전과 흡사한 구성을 띤다. 예외가 있다면 <탈선 춘향전>(1960), <방자와 향단이>(1972), <방자전>(2010) 같은 패러디 버전과 <그 후의 이도령>(1936) 같은 스핀오프 버전 정도다.
하지만 남성들이 춘향을 흠모하는 이유와 여성들이 춘향을 흠모하는 이유는 유사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남성들에게 춘향이 오랫동안 공공연한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었던 데 비해, 여성들이 춘향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남성들이 춘향을 좋아하는 이유보다 훨씬 복잡한 측면이 있다. 남성들이 춘향을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적 여성상으로 꼽았다면 여성들에게 춘향은 숭배의 대상이자 일종의 롤 모델 같은 인물이었다. 남성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 그리고 감히 권력에 맞선 용감한 여성으로서 춘향은 여성 독자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의 ‘춘향’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저자는 일제 식민지 시기 여성 작가들과 기생들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착취하는 장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요컨대 사랑을 남성 지배를 용인하고 여성을 착취하는 장치로 만드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몽룡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춘향과의 사랑을 지켜내지만 결코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위기에 처하지는 않는다. 그는 상층부 양반의 기득권, 즉 세도가의 딸과 결혼할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반면 춘향은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끊임없는 도전과 시험을 이겨내는 여성만이 그 가치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구도는 그 자체로 남성 권력을 확인하고 여성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
한편 춘향과 같은 ‘열녀’의 이미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시대에 또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군대에 간 운동권 애인이 갑작스럽게 의문사한 후 여러 남성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노동운동에 눈뜨게 되는, 조해일 소설 《겨울여자》(1975)의 ‘이화’나 수배 중인 남성을 숨겨주던 상황에서 사랑에 빠져 홀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황석영 소설 《오래된 정원》(2000)의 ‘윤희’의 모습에서 업데이트된 춘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나 춘향의 이야기나 모두 남겨진 여성의 이야기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부재하는 남성들은 자신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여성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 그럼으로써 때로는 남성의 부모 및 다른 가족들이 여성 가장의 부양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얻기도 했다. 사랑을 하는 여성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약점 때문에 착취되기 쉽고 그 때문에 누구보다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가부장제는 아주 잘 이용한다. 사랑이 사적 영역에서의 혁명을 위해 해체되거나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장화홍련전: 모성애와 자매애 다시쓰기

가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장화홍련전은 인기로 치자면 춘향전, 심청전에 못지않았다. 춘향전, 심청전과 더불어 장화홍련전은 일명 ‘딱지본’이라 불리는 구활자 인쇄본의 형태로 식민지 시기 내내 소비되었다. 또한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장화홍련전 영화의 제작은 언제나 춘향전보다 후순위였다. 그 이유는 춘향전보다 장화홍련전의 인기가 덜했던 것, 특히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장화홍련전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들 간의 친밀성이라는 측면에서 장화홍련전이 이성 간의 사랑 이야기인 춘향전에 비해 남성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남성들은 가족 내 약자로서 겪는 여성들의 곤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염상섭 소설 《삼대》와 《광분》, 그리고 수많은 신문 기사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 지식인 작가들에게는 상상으로나마 계모의 입장이 되어 계모의 시각으로 가족 문제를 들여다보는 시각이 부재했다. 이러한 공감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장화홍련전에 대한 남성들의 몰이해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장화홍련전을 남성들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춘향전이 이데올로기와 남성 지배의 요구에 따라 매우 잘 개작되어왔던 것과 달리, 장화홍련전은 남성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온전히 ‘여성’의 입장을 반영한, 여성의 이야기로 개작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서사 속에는 계모가 원래 악녀이기 때문에 딸들을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서사의 이면을 잘 뜯어 읽어보면 실은 계모가 악녀가 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20세기의 관객과 독자 들은 주로 친모를 잃고 계모에게 학대받는 장화와 홍련에게 감정이입 했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비판적인 다시쓰기 텍스트들은 계모라는 캐릭터에 더 주목했다. 분명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가부장 권력의 정당성에 점점 더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이 의문은 계모는 진정 악녀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식민지 시기 여성 작가인 이선희의 <연지>와 임옥인의 <후처기>는 ‘왜 계모는 늘 나쁘게 그려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계모의 입장에서 가정 문제를 다시 읽어낸 대표적인 개작 텍스트다. <연지>의 금녀와 <후처기>의 ‘나’는 시집 식구들과 남편과 전실의 아이, 그리고 전처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람들에 포위되어 자신이 고립되었음을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다. 이들의 다시쓰기는 신여성으로서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 아픔과 관련되어 있는 만큼 여성들의 솔직하면서 깊이 있는 내면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신여성들 중 ‘후처’로서 결혼 생활을 한 이들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혼 스캔들의 주인공인 나혜석도 후처였고 최정희는 김동환과 사실혼 상태에 있었지만 끝내 합법적인 아내가 되지 못했다.
한편 흥행을 위해서는 대중의 전통적인 기대에 영합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계에서도 1970년대 이후 의미 있는 개작 텍스트들이 등장한다. 1972년 이유섭 감독의 <장화홍련전>은 1970년대 초의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반영하여 원작의 내용을 일부 변형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장화·홍련 자매와 계모 간의 갈등이 ‘상속’ 문제에 의해 불거진 것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장화홍련전의 21세기 첫 번째 개작 텍스트인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은 계모와 전실 딸들의 갈등을 심리학적이며 정신분석학적인 서사로 풀어낸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아버지의 새 아내와 경쟁하려는 수미(장화)의 행동은 정확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성 버전과 일치한다.

심청전: 가장 문제적인 개작

이 책이 다루는 세 편의 고전소설 가운데 20세기 개작에서 가장 문제적인 텍스트가 바로 심청전이다. 심청이 갖고 있는 젠더 트라우마는 다른 고전소설의 인물들보다 가족 내 젠더 불평등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 더구나 인신매매와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폭력적이다. 아버지가 허황되게 약속한 공양미 때문에 심청이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는 설정은 20세기 들어 가족을 위해 돈을 벌며 희생하는 딸들의 이야기로 새롭게 해석되었다. 그런데 더욱 문제적인 것은 남성 작가들에 의해 개작된 심청전에서도 이러한 폭력적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희곡 <심 봉사>가 딸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부장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윤이상이 1972년 뮌헨 올림픽 축전 오페라로 작곡한 <심청>은 심 봉사가 파우스트처럼 학문을 열심히 탐구했지만 본질을 찾는 데 실패하고 게다가 시력까지 잃은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결과 여성 인물이 겪는 불행과 아픔, 여성의 목소리는 삭제되어버리고 만다. 한편 최인훈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 황석영 소설 《심청, 연꽃의 길》(2007)은 ‘이주’의 모티프를 적극 활용하는데, 국제 인신매매단에 의해 자행되는 심청의 이동은 남성과 제국에 의해 식민지와 노예와 여성의 모빌리티가 관리되고 지배되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황석영 소설 《심청, 연꽃의 길》은 남성들에 의해 육체를 유린당하는 가운데서도 심청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고 오히려 남성들을 굴복시키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전의 여러 개작들에서 심청이 일방적인 희생양으로 그려진 것과는 자못 다른 설정이다. 그런데 성적 고난을 주체적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남성들을 굴복시키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은 여성의 주체성을 논할 때 종종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여성의 성매매가 발생하는 근원적인 사회구조나 여성의 신체에 가해져온 폭력의 역사가 여성의 ‘정신 승리’라는 허울 속에 감춰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남성 작가들의 개작 텍스트에 비해 영화로 개작된 텍스트가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더 반영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72년 신상옥 감독의 <효녀 심청>은 모성 상실과 상실한 모성과의 재회라는 여성적 이슈를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별들의 고향>과 <영자의 전성시대>로 대표되는 일명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여성들의 생애사적 요소들을 속도감 있게 압축적으로 다루면서 여성들이 겪는 삶의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여성의 몸을 볼거리로 만드는 남성들의 욕구를 전형적으로 충족시키는 상업 영화이지만, 남성 관객들의 욕구와 여성들의 목소리가 서로 경합하며 타협과 절충을 벌이는 전형적인 젠더 트라우마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호스티스 드라마는 가부장제를 대리하는 복화술의 목소리와 가부장제의 통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혼합되어 있는 텍스트이다. 심청전의 20세기 개작 양상을 볼 때 상대적으로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심청의 고통에 보다 주목했던 산업화 시대의 심청전이라 부를 만하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인물에게 가장 폭력적인 텍스트인 심청전이 21세기 페미니즘 시대에 다시쓰기 욕망에 의해 웹툰으로 개작되는 양상은 의미심장하다. 작가 세리는 아주 단순한 질문, 즉 “그녀(승상 부인)는, 왜 심청의 공양미를 대신 내준다고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웹툰 《그녀의 심청》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심청과 승상 부인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다가 급기야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심청과 승상 부인을 동성애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이 웹툰은 심청전의 이성애 중심 서사를 걷어찬다. 이들에게 동성애, 자매애는 여성을 노예화하는 가부장제 질서를 완전히 분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전의 개작들이 주저하고 적절히 위장하며 가부장제와 타협했다면 《그녀의 심청》은 그러한 한계를 날려버리고 심청전을 페미니즘 텍스트로 거듭나게 만든다.
저자는 《그녀의 심청》만큼 남성 중심적 젠더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심청전 개작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남성 빌런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판타지이지만 15세 소녀들의 소원을 가감 없이 성취시킨다. 바로 2010년대 이후 재부팅된 페미니즘의 힘이다.
서지정보:책소개, 저자소개, 출판사서평, 목차
여성들의 다시쓰기 욕망은 어떻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틀고 전복해왔는가?

최초의 춘향전 영화에서 호스티스 드라마를 거쳐 웹툰에 이르기까지
여성적 다시쓰기의 변천사를 면밀히 추적한 문화연구서

어엿한 장르에서 미완의 조각난 서사에 이르기까지,
고전소설의 곁에 존재했던 무수한 읽기와 쓰기의 욕망들

여성들의 다시쓰기/다시읽기 욕망은 어떻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틀고 전복해왔는가? 20세기 초 최초의 춘향전 영화에서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를 거쳐 지금의 웹툰에 이르기까지, 고전소설의 개작 양상을 통해 여성적 다시쓰기의 변천사를 면밀히 추적한 문화연구서. 저자가 고전소설의 개작에 주목한 것은 그 텍스트들이 젠더 트라우마, 그리고 가부장제에 대한 다양한 저항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젠더적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생기는 트라우마를 가리켜 ‘젠더 트라우마’라고 명명한다. 그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쓰고 싶은 충동과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다시쓰기’라는 저항의 행위를 통해 서사의 주체가 된다.

고전소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여성 서사인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은 가부장제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 여성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승리의 서사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부장제의 규칙을 잘 따르는 여성들의 승리였다. 그런데 젠더 관계가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띠는, 즉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점점 더 크게 내고 싶어 하는 20세기에 들어 이 세 편의 소설은 폐기되지 않고 개작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 소설이 다양하게 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기에 이를 통해 여성 집단이 일종의 공감과 해석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은 여성들의 위험한 욕망과 유교적 가부장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텍스트였다. 양반의 처로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했던, 기생 딸 춘향의 욕망은 정절을 지키는 열녀로 포장되어야 했고, 가문의 인정을 받아 자기 지위를 지키고자 고투했던 장화·홍련의 계모는 전처의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했고, 가난한 집안의 딸인 심청은 아버지의 허세로 인해 인신매매되었지만 ‘효’라는 명분은 심청의 희생을 미화했다. 20세기 이후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창작되어온 개작 텍스트들은 이렇듯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허울에 가려진 여성의 욕망을 들춰내 돋을새김하고자 하는 주체적 다시쓰기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다시쓰기는 결국 젠더 트라우마의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양상을 극복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춘향과 장화·홍련과 심청의 변화된 모습을 다른 텍스트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예측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 어떤 개작 텍스트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완전히 성차별을 극복하여 가부장제를 더 이상 새삼스럽게 비판하거나 공격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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